저작권 선진국으로 가는 길
저작권 선진국으로 가는 길
2009년 개정된 저작권법 제133조의2 제4항에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게시판이 불법복제물을 반복적으로 게시하는 게시판일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해당 게시판의 서비스 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법복제물의 삭제 또는 전송중단 명령이 3회 이상 내려진 게시판으로서 저작권 등의 이용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해당 게시판의 전부 또는 일부의 서비스 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실효적인 법 집행을 위해서는 심의절차를 간소화하고 심의방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법 제133조의 2에만 심의과정이 세 번에 걸쳐 언급되고, 계정정지와 게시판 폐쇄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각각 4회에 걸쳐 심의를 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위원회의 심의가 얼마나 신속, 정확하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적용 회수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게시판 : 그 명칭과 관계없이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일반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부호ㆍ문자ㆍ음성ㆍ음향ㆍ 화상ㆍ동영상 등의 정보를 이용자가 게재할 수 있는 컴퓨터프로그램이나 기술적 장치(‘정보통신망 이용 촉 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정의).
<표 1> 법 제133조의2 관련 절차도
문화체육관광부 |
Y |
저작권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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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 F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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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
온라인서비스제공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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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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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운영자 복제물게시자 |
G |
H |
카페/블로그 등 게시판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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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
A : 불법복제물등의 복제·전송자에 대한 경고(133조의2 1항 1호) B : 불법복제물등의 삭제 또는 전송 중단(133조의2 1항 2호) C :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해당 복제·전송자의 계정 정지명령 D :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해당 게시판의 전부 또는 일부 정지 | |||||||||||||||||||
요건 |
E : A를 3회 이상 받은 복제·전송자가 불법복제물등을 전송한 경우(133조의2 2항) F : B의 명령이 3회 이상 내려진 게시판으로 저작권 등의 이용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 |||||||||||||||||||
집행 |
G : 계정 정지 사실을 해당 복제·전송자에게 통지(133조의2 3항) H : 게시판 정지 X : 위원회의 심의 / Y : 심의결과 회신 | |||||||||||||||||||
심의기간 |
- A와 B의 조치를 위해서는 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며 C, D의 명령을 위해서는 A, B의 조치가 3회 이상 있어야 함. - C, D의 조치가 최종 확정되기 까지는 각각 4회에 걸친 심의가 진행되어야 함 - A, B의 심의기간을 7일 C, D에 따른 심의기간을 14일로 가정하고 2회에 한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면 C, D의 조치를 취하기까지 최대 105일 소요 |
저작권위원회의 심의는 제133조의2 제1항에서 시작되며, 제1항의 의해 경고 또는 삭제 중단 명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정되지 않을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동일한 침해행위에 대해 3회에 걸쳐 심의를 요청하고 경고 및 전송중단 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3회에 걸친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침해가 시정되지 않았을 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해당 복제전송자의 계정과 해당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게시판을 정지시킬 수 있다.
계정정지의 경우 같은 침해자에게 3회에 걸쳐 경고하기 때문에 누군가 작정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상황이 아니라면 계정이 정지되기 전에 자발적으로 불법복제물을 삭제할 것이므로 실제로 계정이 정지되는 상황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게시판 폐쇄의 경우는 제133조의2 제1항의 전송중단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이기 때문에 OSP의 책임이 크게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가령 특정 게시판에 게시물이 1,000개 있고 이 중 300개가 불법복제물이라고 가정하면, 한번에 100개씩 3회에 걸쳐 전송중단 명령을 내린 게시판에 대해 3번째 삭제명령이 내려진 이후 삭제를 요청한 300개의 복제물 중 270개가 삭제됐으나 30개가 그대로 게시되어있다면 3회에 걸친 명령에도 불구하고 해당 게시물이 삭제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해당 게시판에 대해 정지 명령을 위한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고려할 점은 첫 번째 삭제 또는 전송중단 명령으로 일부의 게시물만 지우고 일부는 그대로 존재하는 경우에 대한 처리방안이다. 1,000개의 게시물 중 첫 번째 삭제/전송 중단명령에서 몇 개를 지웠을 때 두 번째 삭제/중단 명령을 내릴 것인가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1개의 게시판에 300개의 불법 복제물이 있다면, 원칙적으로는 불법 게시물이 모두 삭제될 때 까지 계속해서 삭제/전송 중단 명령을 내려야 한다. 3회에 걸쳐 삭제/전송 중단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300개의 게시물 중 30개가 남아있다면 게시판 정지 명령을 하는 것이 옳지만, 나머지 700개의 합법 게시물의 처리가 곤란해진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실제 법 집행 과정에서는 제133조의2 제4항의 게시판 정지명령이 내려지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제133조의 2 제2항의 계정 정지 명령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시판 운영자가 이런 점을 악용해 합법게시물의 비율을 일정수준 이상 유지하면서 불법게시물의 양을 조절하는 형태로 게시판을 운영하면 정지 명령을 내리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게시판과 게시물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등, 평가위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하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 심의결과가 정지대상이 아닌 것으로 나올 경우 해당 게시판을 어떻게 볼 것인지도 문제다. 위에서 예로 든 게시판처럼 만약 여전히 30개의 게시물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해당 게시판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므로 위원회의 입장에서는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의 저작권 정책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디지털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조치 적용이 미비하거나 삭제명령 불이행시 부과하게 되는 과태료의 부과 기준을 놓고도 많은 논쟁이 있었던 점을 상기하면 개인 계정의 정지와 게시판 폐쇄는 또 다른 논란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정저작권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인터넷 불법복제를 한 순간에 뿌리 뽑을 수는 없다.
적국을 파괴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上策)이고, 적국을 파괴해 이기는 것은 차선(次善)이다. 적군을 다치게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고, 적군을 죽이고 다치게 하여 이기는 것은 차선이다. 적의 부대를 온전하게 두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고, 적의 부대를 깨뜨려 이기는 것은 차선이다. 적병이 많더라도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고, 피를 흘려 이기는 것은 차선이다. 비록 다섯 명 정도로 이뤄진 소규모 부대라도 다치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고, 그들을 쓰러뜨려서 이기는 것은 차선이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최선이 아니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따라서 최상의 병법은 적의 계략을 미리 알아 깨뜨리는 것이고, 차선은 적의 외교를 봉쇄하는 것이다. - 손자병법, 모공편 -
이제는 저작권보호의 개념도 달라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저작권보호는 일반적으로 단속을 의미했으나 기술발전과 사회변화에 따라 보호의 개념도 변화해야 한다. 저작권을 보호하는 방법은 크게 사전적인 것과 사후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전적 보호는 교육, 홍보, 연구보고서 발표, 기술개발, 세미나 등을 통해 관련 주체들이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 활동이 여기에 해당된다. 사후적 보호는 단속이나 법적 대응(소송 등)을 통해 이미 침해가 일어난 상황에서 더 이상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강제력을 행사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술발전으로 정보 유통량과 속도가 급속히 증가하는 반면 법과 제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어 기술과 제도 간에는 항상 시간 차이가 발생한다. 법을 근거로 한 단속은 저작권 침해의 일부를 구제할 수 있으나 단속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으로 불법유통이 확산되고, 전문화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단속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단속과 병행해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예방활동에 주목해야 한다. 우수한 연구보고서, 감동적인 홍보영상 하나가 저작물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단속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침해현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불법 사이트에 접속해 차단하는 것도 필요하나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한 후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 저작권보호와 이용활성화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최종 목표라는 점을 인식하면 저작권보호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기술개발, 연구보고서 발간, 세미나 개최 등으로도 단속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저작권법 제1조는 저작권법의 목적에 대해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했다. 저작권을 보호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문화와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저작권보호를 이유로 국민이 누려야할 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돼서도 안 되겠지만 자유이용을 위해 저작권자의 창작동기가 좌절되는 상황 역시 곤란하다. 저작권법과 저작권 산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저작권정책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서비스사업자들은 정부의 정책과 저작권제도를 잘 이해하고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서비스모델 개발단계부터 저작권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이는 클린사이트 지정 등과 같은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은 불법시장을 최소화하고, 불법시장을 합법화하도록 유도하고, 합법시장을 육성하면서 시장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다.
(저작권 집중관리 실태조사, 현대경제연구원,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2009, 260면)
이 모든 과정이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 질 수는 없을 것이므로 각각의 이해당사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활성화 될 필요도 있다. 저작권산업이 조금 더 발전해 무한한 수익을 창출하기 시작하면 지금과 같이 정부가 앞장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직 우리 저작권산업과 제도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